육근우 / 영어

2022.11.20

늦가을 가족과 함께 떠난 나들이 점심시간에 걸려온 뜻밖의 통역 전화 한 통과 우리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하루

#경찰서#사건/사고
오랜만에 다니는 직장 연차를 내고 고향집에서 머무르던 날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을산으로 나들이를 떠나 풍경을 누리고 점심때가 되어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막 점심식사를 하려던 무렵 오랜만에 bbb 통역 요청 콜이 들어왔습니다. 아침을 거르기도 했고 부모님과 함께 준비한 점심밥을 먹으려던 참이라 통역 전화를 받을지를 잠깐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통역 전화 1통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먼저 식사 들고 계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잠시 자리에서 벗어나 통역콜을 받았습니다. 112 상황실에서 걸려 온 전화였습니다. 이런 경우 가벼운 통역이 아닌 경우가 꽤나 있어 약간은 긴장하게 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3자 통화 형식이었기 때문에 신고 전화를 한 외국인과 실시간으로 통화를 하게 되었고 떨리는 목소리의 외국인 여성분은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과거 비슷한 상황의 통역 전화가 생각이 나고 혹시 이주인 여성분의 가정폭력 상담? 아니면 길을 잃은 상황 등 가능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습니다. 상황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고 시간을 다투는 내용이었습니다. 신고 내용은 오늘 아침 남편이 일을 나간다고 하고서는 연락이 안 되는데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자기는 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말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으며 미안하지만 죽고 싶다고 이야기를 끝으로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여 들은 내용을 토대로 112 상황실에 알려드렸습니다. 이런 경우 우선 필요한 것은 자살을 암시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필요하다고 상황실에서 말씀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고를 한 사람의 인적사항 또한 필요하다고 했는데 자살을 실행 할지 모르는 사람의 행적을 찾는 데에도 필요하지만 현장 연결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 여성분께 상황을 설명 다시 드리고 필요한 정보내용을 전달하였고 정확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휴대폰 문자로 받기로 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bbb 통역 간 통역봉사자의 전화번호를 상대에게 노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신고자 남편분이 시간을 지체하면 극단적인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의 번호를 알려드리고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즉시 남편분의 신상과 함께 전화번호를 전송받았고 이 내용을 112 상황실에 전달하였습니다. 자살 예고의 경우 112 상황실에서도 신고를 받는 즉시 위치 추적을 통한 인근 경찰서의 출동을 요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치 추적을 실시간으로 해서 인근 경찰서에서 바로 출동했다는 내용을 통역했고 신고자의 주소로 경찰이 방문하여 도움을 줄 것이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외국인 여성분의 성함은 니콜이라는 분이셨는데 이 내용까지 통역을 드렸고 우선 남편의 위치를 추적하여 현장으로 경찰이 출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울먹이셨습니다. 3자 통화를 하며 통화 감도가 좋지 않은 상황도 잠시 있었고 여러 번 되물어 통역을 했어야 하는 부분도 있어 통역 시간은 짧지 않았습니다. 112 상황실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받았다고 하시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주셔서 그제서야 저도 한숨을 돌리고 전화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만큼 저도 통역을 하며 최대한 집중하려 하였고 상황에 맞춰 침착하게 대응해주신 112 상황실 근무자분께 제가 인사를 드리고 싶을 만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듯 결코 짧지 않았던 10여분간의 통역 전화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점심식사를 앞두고 자리를 뜨고는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마무리하고 돌아온데 의아함을 느끼신 부모님은 점심도 안 먹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긴장이 일순간 풀리기는 했지만 신고자분의 남편분이 걱정이 되어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 일상적으로 점심을 먹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 한일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과 함께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잘 도와줬고 전화를 안 받았으면 후회 할 뻔 했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당시의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112 신고 주셨던 외국인 여성분과 남편분이 지금은 함께 식사를 하며 주말을 보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상의 행복이란 건 우리가 항상 무심히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통역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