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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국민일보] 무료 통역서비스 ‘BBB 코리아’의 자원봉사자들 ‘언어 기부’로 나눔 실천해요
“여자 친구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으니 빨리 도와주세요.”
홍종철(65)씨는 지난해 6월 어느 날 새벽 2시 다급한 목소리로 구조를 요청하는 미국인 A씨의 전화를 받았다. 홍씨에게 전화하기 전 A씨는 인근 소방서에 전화를 했지만 의사소통이 잘 안됐다. 소방대원은 ‘heart attack(심장마비)’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통역서비스 제공 단체인 BBB코리아(Before Babel Brigade Korea)에 전화해 A씨와 홍씨를 연결해줬다. A씨와 통화를 마친 홍씨는 소방서에 응급상황임을 알려주고 의료장비와 구급차를 보내도록 했다. 홍씨는 “밤잠을 설쳤지만 사람 목숨을 구하게 돼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20여년간 공직에 몸담았던 홍씨는 1979년부터 2년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응용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통계청 통계국장 등을 지낸 뒤 공직에서 물러나 서울 지역 한 호텔 감사로 근무하고 있다.
BBB코리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24시간 무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현재 17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35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할 말을 묻는 경우도 있다. 지난 1월 5일 한국인 B씨는 베트남 여성에게 “눈이 내려서 예쁘다”는 말을 베트남어로 하고 싶다며 자원봉사자 송영념(38•여)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송씨는 “베트남어는 단어의 높낮이만 달라져도 뜻이 완전히 바뀐다”며 “대신 말을 전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B씨는 자신이 직접 그 말을 전하고 싶다며 끝내 어려운 발음을 여러 차례 반복해 연습했다. 한국국제협력단의 현지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베트남어를 배운 송씨는 “의미는 조금 달라졌을지 몰라도 B씨의 마음만은 분명히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남편과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다며 가정 상담에 가까운 통역을 의뢰하는 중국인 여성도 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며칠 안된 20대 초반의 중국인은 지난해 7월 이현준(25•여)씨에게 “중국에 있는 엄마가 한쪽 청력을 잃어 꼭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씨 통역으로 이 같은 사정을 전해들은 남편은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2~3일 시간을 내서 중국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건국대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씨는 “2008년 이후로 여행객보다는 다문화가정 남편이나 아내가 통역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가정불화까지 해결해주는 것 같아 기쁘게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BBB코리아의 통역 서비스 제공 횟수는 2002년 2만600여건에서 2004년 4700여건으로 줄었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09년 4만700여건으로 폭증했다. BBB코리아 관계자는 “베트남이나 중국 여성과 가정을 꾸리는 한국 남성이 증가했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한국 관광을 오면서 이용 횟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0.03.12 21:29] 김경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