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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7[bbb 라운지] 서울대 박우희 명예교수
`언어의 바벨탑 낮추는데 한몫`
1973년 봄, 아프리카 북단에 있는 리비아에 들렀을 때다. 파리에 가기 위해 리비아 대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하는데 담당 직원이 `리비아 말로 서류를 제출하시오` 하는 게 아닌가.
꼭 리비아 말로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지 지금도 머리가 갸우뚱해지지만 당시 리비아 사람을 만나러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난다.
또 2001년 정월, 동남아에 있는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다. 자동차번호판이 아라비아 숫자(1,2,3 등)가 아닌 미얀마 언어로 표시돼 있었다.
당시 비슷한 차량 중에 내가 타고 온 차를 어떻게 구별해내야 할지 잠시 혼돈을 느꼈었다.
물론 이 두 경우는 언어가 단절된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사회에서도 여기저기 `언어의 높은 벽`, 즉 `언어 바벨탑`이 흔히 눈에 띈다.
북쪽의 반(半)은 말할 것도 없고 남쪽에서도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언어문제가 빚어내는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나친 한글 사용으로 한자를 쓰는 노인세대와 젊은세대의 언어가 단절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광고판.교통표지판이 온통 한글로만 표기돼 방한 외국인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아무리 우리말이 아름답고 자랑스러워도 언어 아이덴티티와 언어 바벨탑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곧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 닥쳐오고 수십만명의 외국인이 한국을 찾는다.
그들 방한 외국인이 서울 거리.부산 거리에서 언어의 높은 벽을 절감하며 어쩔줄 몰라 하고 서 있을 풍경들이 눈에 선하다.
젊어서 외교관으로 해외 근무를 하고 오랜 서울대 교수 시절에도 영국.일본.독일.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 초빙교수 생활을 했었다. 이제 은퇴해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라도 언어의 바벨탑을 낮추는데 일조를 해보자`는 작은 소망으로 BBB운동의 영어봉사자로 참여했다.